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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 앵커 :

오는30일은 지금으로부터 꼭 백년 전, 근대화의 출발점이었던 갑오경장이 시작됐던 날입니다. 구한말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되는 격동의 시대에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고, 1세기가 흐르는 세월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어떤 변천을 겪어왔는지 궁금합니다.

임병걸 기자가 통계로 비교를 해 드리겠습니다.


임병걸 기자 :

1926년 조선왕조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장례식에 운집한 사람들의 행렬입니다. 움직이는 사진으로써는 가장 오래된 개화기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14년을 거슬러 올라간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천3백3만명 이었습니다. 지난해 말 남북한을 합한 인구가 6천8백만명. 그러니까 80여년만에 5배가 늘어난 셈입니다. 당시 서울의 인구는 불과 28만명. 부산과 대구도 고작 10만명이었습니다. 서울과 부산의 인구는 80년만에 무려 40배. 대구도 25배가 늘었습니다.

지금의 서대문밖에 즐비한 기와집들입니다. 1899년당시 서울에 있던 기와집은 만3천여호. 전체가구의 30% 정도였습니다. 나머지는 초가집이었습니다. 당시에 통용되던 1원짜리 지폐입니다. 1898년의 쌀값은 얼마나 될까? 지금 돈으로 환산할때 한가마에 2만3천원. 현재 12만원에 약 5분의 1입니다. 쇠고기 한근값은 7백원으로 지금의 13분의 1수준입니다. 이때 당시 목수의 일당은 0.8원, 물건으로 환산할 경우 쌀 한말정도를 살 수 있는 금액입니다. 지금 정부의 노임단가로 계산하면, 목수는 쌀 세말을 살수있어서, 그때 당시보다3배정도 임금이 오른셈입니다.

1902년 전화기 댓수는 불과 3백10대. 지난해 전화기 댓수는 천6백만대를 넘어 90년 동안 무려 5만배 이상 늘었습니다. 정보와 통신 산업이 1세기동안 가히 혁명적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KBS 뉴스, 임병걸입니다.